화장실은 왜 늘 북쪽일까요 — 한 번쯤 의심해 볼 관행
화장실을 북쪽에 두는 이유가 정말 맞을까요 — 남서쪽의 이점
대부분의 집 설계에서 화장실은 북쪽 구석에 배치됩니다. 도면을 보시면 거의 예외 없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. 왜 그럴까요? 이유는 단순합니다. "화장실은 부수적인 공간이니까 햇빛 안 드는 자리에 두자"는 관행 때문입니다. 그런데 이 관행, 진짜 맞는 걸까요?
북쪽 화장실의 문제
북쪽은 하루 종일 햇빛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. 화장실은 물을 자주 쓰는 자리라 습기가 많습니다. 습기 + 햇빛 없음 = 곰팡이의 완벽한 조건입니다.
실제로 살아 보시면 아실 겁니다. 북쪽 화장실은 겨울에 특히 잘 마르지 않습니다. 수건이 축축하게 유지되고, 벽 모서리에 검은 곰팡이가 생기고, 실리콘 이음매에 자국이 남습니다. 청소해도 다시 생깁니다. 공간 자체의 조건이 곰팡이를 만들기 때문입니다.
남서쪽 화장실의 이점
반대로 남서쪽에 화장실을 두면 어떻게 될까요?
첫째, 화장실이 잘 마릅니다. 오후 햇빛이 들어와 습기를 자연 건조시킵니다. 수건이 뽀송하게 마르고, 벽면이 축축하지 않습니다. 곰팡이가 살 조건 자체가 사라집니다.
둘째, 서쪽 해를 화장실이 막아 줍니다. 앞서 서쪽 해가 얼마나 뜨거운지 얘기했습니다. 그 서쪽 벽면에 거실이나 침실이 있으면 여름 내내 뜨겁습니다. 그런데 화장실이 서쪽에 있으면 화장실이 완충 역할을 합니다. 화장실은 하루 종일 사람이 있지 않는 자리라, 뜨거워도 상관없습니다. 화장실이 서쪽 해를 다 받아 주고, 거실과 침실은 시원한 채로 있습니다.
왜 이렇게 안 지을까
이 원리를 알면, 왜 지금까지 이렇게 안 지었는지 궁금하실 겁니다.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.
- 관행: "화장실은 북쪽"이 오랜 표준이라 다른 배치는 낯설게 느껴집니다.
- 거실 우선: 남향에 거실을 두어야 "햇빛 잘 드는 집"으로 팔립니다. 화장실이 남향으로 가면 거실이 밀립니다.
- "화장실에 왜 햇빛?"이라는 편견: 사람들이 안 원한다고 생각합니다.
즉 기술적 이유가 아니라 관행과 마케팅의 이유로 이렇게 지어져 왔습니다. 그런데 살아 보면 화장실이 마르는 것과 서쪽 해가 차단되는 것의 이점이, 화장실이 어둡다는 단점보다 훨씬 큽니다.
새로 지으시는 분들에게
새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들은 화장실 위치를 한번 다시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. 특히 다음 조건에 해당하면 남서쪽 배치를 고려해 볼 만합니다.
- 서쪽에 큰 창이 있어서 여름에 뜨거울 것으로 예상되는 자리.
- 기존에 곰팡이 문제를 겪어 본 분.
- 수건이 잘 안 마르는 문제로 고생하시는 분.
물론 창문 위치, 배관 위치, 가족 동선까지 종합해서 판단해야 합니다. 다만 "화장실 = 북쪽"이라는 자동 반응은 한 번 의심해 볼 만합니다.
결론
관행이 늘 옳은 것은 아닙니다. 특히 기술적 근거가 아니라 마케팅 관행에서 나온 것이라면 더 그렇습니다. 화장실 남서쪽 배치는 곰팡이 방지와 서향 완충이라는 두 가지 이득을 동시에 줍니다.
건축에서 ‘절대’라는 건 없습니다. 그보다 나은 길은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, 때로는 관행의 반대편에 그 나은 길이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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